2017년10월21일 박형선목장 소그룹초청 간증 (고윤희집사)


 

믿지 않는 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중학교 때 친구 따라 중등부 예배를 드리게 된 계기로

작은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미션스쿨에 진학을 했기에 그곳에서 수업을 기도와 찬양으로 시작 했고

학교에서 드리는 예배시간, 성경과목을 통해 교회생활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끈은 놓지 않았지만 믿음이 성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가게 되었고 사회생활을 할 때는 술과 세상에 푹 젖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라는 생각은 못하고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결혼 전에 대기업 화장품 회사를 다니며 미용 강사 팀에서 메이크업 일을 했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넉넉한 월급으로 여유 있게 치장하며 쓰고도 남아 저축도 하며 지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빤한 남편월급으로 임부복 한 벌 마음 편히 사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육아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화장품 회사 다니면서 비싼 화장품도 여유 있게 사서 쓰다 아이 낳고 모유수유 하다 보니

머리도 질끈 묶게 되고, 허름한 옷만 입고 다니는데 비해 친구들은 직장에서 자리도 잡고 차도사고 운전도 하는데

내 모습은 많이 초라해보였고 도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우울했습니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엄마는 명절이나 제사 때 작은 엄마들이 늦게 오시거나,

오지 않으셔서 혼자서 다 준비하시고, 마무리까지 혼자 하시느라 힘드셨던 터라

막내며느리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막내아들인 남편을 반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댁은 위계질서가 군대저리가라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돈이 많아서 그런지 좋은 직업을 가지신 큰아주버님에 큰형님은 일을 안 하고도

60평 아파트에 우리 집보다 더 좋은 자기 차를 따로 갖고

애들한테도 과외비로 한 과목당 백만원 씩 쓴다고 얼마나 기를 죽이는지...

거기다가 큰 형님이라며 저를 자기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꼼짝도 못하게 했습니다. ]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뭘 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의 발꿈치도 못 따라갈 것 같은 생각이 나를 제일 우울하게 만들었고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 나에게 친정 엄마는 너무 고생하시며 생활하셨기에 뭐가 힘드냐고 이해를 못해주셨습니다.

아이가 둘인데 이러다가 일을 저지를 것 같았습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은 들었지만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그 때 하나님이 떠올랐습니다. ]

고등학교 때 잠깐 느꼈던 믿음이었는데 뭐라도 붙잡고 싶은 생각에

동네 언니 소개로 집근처 교회에 나갔습니다.

남편이 교회 다니는 걸 반대해서 수요예배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답답하니 예배를 드리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설교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졸리기만 하고 은혜가 되지 않았고 그저 자리만 채우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잡아주시고 손 내밀어 주시는 건 알겠는데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교회 다니던 언니가 주향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친한 친구가 운전 중에 극동방송을 들으며 주향교회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교회로 인도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향교회를 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직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유아교육에 관련된 일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서 우리아이 첫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라는 말을 들으니

인정받는 것 같고 몸은 고되지만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정받고 좋은 것도 잠깐, 주말에도 전문가 과정을 듣느라

6개월 동안 토요일을 반납하고 자격증 따는 것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매일 수업준비. 처음 하는 운전, 집에 와서의 육아가 계속되니 몸이 지쳤습니다.

토요일에 애들은 족구 한다는 남편에게 맡기고 주일은 집에서 잠만 잤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편할 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불만, 애 아빠도 불만, 친정 엄마에게도 수업이 늦을 때마다 아이들을 부탁하고,

돈도 모이지 않고, 스트레스가 많아지니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소화가 하도 안 되서 검사해보니 갑상선 암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직장을 쉬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돈도 없고, 몸은 더 안 좋아지고, 시댁에서 스트레스는 받고.. 

매일 병원 행이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가 와도 열이 안 떨어져 입원을 해야 하고,

입원해서도 면역력이 떨어지니 6인실에서 1인실로 옮겨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댁에서도 자주 혼났습니다.

젊은 게 건강관리도 못하고 매일 아프다고....

 

그렇게 몇 년을 쉬며 지내다 다시 취업을 했습니다.

그때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취업한지도 몇 달 안 되서 힘든데 어머님이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시니

형님들과 번갈아가며 간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애들도 초등학교 저학년, 유치원생으로 손도 많이 갈 때였는데

오전에는 출근해서 일하고 오후에는 어머니 병간호로 대소변 받아내며

저녁에는 애들 케어하고 밤에는 수업준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습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어쨌거나 자기 어머님 병간호가 나보다는 먼저였습니다.

 

그 무렵 매번 전셋집 만기에 정신없이 집 옮겨 다니며 고생하는 우리에게

시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주신 것을 계기로 형님들에게 저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결혼 십 년 만에 한번 형님께 대들었다는 이유로 투명인간 취급에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 아이들도 덩달아 미움을 받고, 시댁에 가고 형님들 보는 게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자 다시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암 재발에 전이까지...

저요오드식에 외출도 자유롭지 않고 방사선치료로 사람도 못 만나고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고

갑상선 저하증에 항진증이 번갈아 오는데 한 여름에는 담요를 세 네 장을 뒤집어 써야하고,

방사선 치료 후에는 부작용으로 밥 한 숟가락 못 먹고 항진증이 와서

10키로가 빠지며 숟가락 들기도 힘들고 손도 떨렸습니다.

 

그때 나를 잡아주신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솔직히 그 때는 하나님보다는 같은 목장 식구들이었습니다.

못 먹는 내게 반찬 해다 주시고, 기도해 주시며 챙겨주시는 집사님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못 받아본 사랑이었습니다.

목자님이 그런 나를 하나님께로 조금씩 인도해주셨습니다.

시댁 형님들에 대한 스트레스와 매일 아픈 엄마가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리 만무했습니다.

집에 오면 방전된 배터리 같고, 피곤하니 잠만 자고 아이들에게 짜증만 냈으니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컸을리가 없었습니다.

큰 애가 6학년 때 학교 가기도 싫어하고 반항이 최고점이었습니다.

약해진 몸에 커다란 스트레스로 과호흡 증후군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숨이 몰아쉬어지며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공포,

손발에 마비가 오고 죽음이 눈앞에 오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희망이 없는 것 같던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교회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좋고, 만남이 즐거웠습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있진 않았습니다.

그냥 좋아서 다니게 된 교회에서 점점 하나님을 만나게 이끄셨습니다.

성령 수양회. 예배, 성경공부로 서서히 나를 가까이 이끄셨습니다.

전에는 너무 바쁜 우리 집사님들의 삶은 딴 세상 얘기 같고 난 절대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집사님들처럼 바쁘게 지냅니다.

돈과, 운동도 분별하지 못해 섬기던 마음도 말씀으로 잡아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보다 돈과 운동이 함께 섬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기도하는 엄마들, 큐티, 통독, 영성일기, SQ...

그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

 

큐티로 만나는 하나님, 통독이 전혀 안 되던 나인데

지금은 성경을 읽는 것이 가끔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을 읽을 때만큼의 두근거림과 설레임도 주십니다.

영성일기를 통해 부정적 생각에서 주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게 하시니

우울하고 힘든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기도하는 엄마들로 우리 아이도 달라졌습니다. ]

학교 가기 힘들어서 지각이 생활이던 아이는 올해 들어 지각 한번을 안 하고,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잘 해주는 아이로 바뀌었습니다.

 

매일 우울함에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도 싫은 나였고,

몸이 항상 피곤해서 조금만 힘들어도 병원에 가서 대 여섯시간 링거를 맞아야 하는 나였는데

완쾌 된 건 아니지만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도 병원 가는 횟수는 줄었습니다.

이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배려를 배웠습니다.

우리 형님들과도 이제는 좋아져서 제가 먼저 전화 드리고,

명절에도 같이 수다 떨고, 편안하게 대화합니다. 그 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배웠기에...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지금은 SQ영성지수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왜 핸드폰이 안 좋은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하나님이 바로 곁에 계심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앞에 서는 것도 주목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런 제가 간증을 결심했습니다.

평소였으면 신경 쓰고 스트레스 받아 또 병원행일 것이지만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얘기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미숙한 나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가 너무 기대되고 희망도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현실을 바라보면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 아이들이 쓰임 받고,

우리 가정이 세워질 것이 기대되며 설레입니다.

 

내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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