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9월15일 임은영목장 소그룹초청 간증 (권문영성도)

 

 

1.예수 믿기 전 나의 모습

 

우선 저를 소개하자면, 나이는 39, 이름은 권문영, 직업은 현재 없고, 고향은 전북익산,

취업은 충남 논산, 결혼 후 대전, 이렇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 4녀 중 장녀로 태어나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교를 다닐 때는 주말마다 순두부집에서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2년간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 닭갈비집과 커피숍,

맥주집에서 일을 하여 돈을 벌었고,

다시 엄마가 계신 충남 논산으로 가 김밥집을 하시던 엄마가게에서 일을 도와드리며

등록금을 모아 다시 2학년 2학기를 등록했습니다.

다시 학교에 가서 적응을 하는데 점심시간이 되니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도 처량하고 초라해진 것 같아 그 당시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 지르면서

나 학교 다니기 싫어하며 떼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좋은 동생들을 만나 학교생활도 무사히 마치고, 열심히 공부하여 자격증도 취득하여

20043월부터 작은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생활은 3년 정도 지나니 업무에 익숙해졌고 같이 일 하시는 분들도 좋은 분들을 만나 잘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2.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살던 중, 셋째동생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갈 곳이 없어

제가 있는 논산으로 왔고, 그 뒤로부터 저의 인생은 조금씩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렵게 자라서돈 은 무조건 모으고 보자라는 주의였는데.

동생은 돈이 있으면 그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자기 치장하는데 모두 다 쓰더라구요.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사는 것 이라면서요.

그런 동생은 일요일만 되면 예쁘게 치장을 하고는 논산에서 제일 큰 교회를 가더라구요.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땐 아침 7시 예배를 가기도 하고.

보통은 11시 예배를 드린 후, 청년모임도 하더라구요.

그리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묵상이라는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고, 항상ccm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런 동생과 함께 살아서인지 제 생활에도 하나씩 하나씩 예수님이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병원, , 병원, ....

무미건조한 생활에 주말만 되면 만날 남자친구도 없던 터라

어느새 저도 동생을 따라 매주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는 게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 나이는 먹는데 남자친구는 안생기고, 선을 봐도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이 싫다하고...

선보러 나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키도 작고, 말재주도 없고, 다 별로, 별로, 별로였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고, 드디어 결혼 타이밍이 온 건지, 콩깍지가 씌인건지, 만나서 연애한지

3개월 만에 상견례하고, 8개월 만에 결혼식 하고, 201110월에 대전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 온 후, 저는 교회에 나가고 싶어 일요일만 되면 다닐 교회를 정하기 위하여 집 근처부터 한주에

한 교회씩 탐색을 하러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주향교회를 오게 되었고,

교회에 온 첫 날, 젊은 목사님의 설교가 제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향감리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3.예수님 믿고 변한 나의모습

 

적지 않은 제 나이 32, 남편나이 36, 시댁에서는 자꾸 아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전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남편과 시어머니는 간절히 바라는 눈치셨고

어머니는 시험관이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돈은 보태준다고 하시구요.

그래서 가까운 산부인과에서 인공수정을 1번 했으나 실패했고

다시 둔산동 난임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나팔관검사는 정상이었으나 난소기능저하로 남들보다

임신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시험관에 도전했으나 1. 2번 다 실패했습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마음과 몸은 피폐해졌습니다.

내가 애 낳은 기계도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임신을 위하여 한약은 기본이고, 옻닭국물과 흑염소, 먹기 싫은 것들을 매일매일 억지로 먹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먹기가 싫었는지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몰래 하나씩 버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참 약하게 태어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30대 초반부터 어깨가 안 좋아 일을 못 할 정도였는데 2015년 봄에는 걷는 게 부자연스럽더라구요.

충남대학병원과 카톨릭병원을 갔더니 염증이 있다고 해서 한 달동안 약을 먹었지만 호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터넷으로 네이버 카페를 뒤지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저랑 증상이 비슷한 환자를 알게 되었고, 서울 아산중앙대병원이 잘 본다하여 찾아갔습니다.

저의 병명은 고관절 비구순 파열고관절의 각도가 다른 사람 보다 작게 태어났는데

많이 걷고, 많이 쓰다 보니 연골이 부딪히면서 찢어졌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한테만 이런 시련을 주시는걸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대로 걷지를 못해 매일 눈물 흘리며 집 안에서 누워서 지냈습니다.

몸도 마음도 상한 채 누워만 지내던 어느날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아1714)

 

그래, 이 시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집사님들이 계셨지?

나도 이렇게 할 일 없이 누워서 내 신세만 탓 할 게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나를 위한 많은 집사님들의 기도도 있었고,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나의 질병도 고쳐주시고

우리부부에게 아기도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4년 동안 그렇게 병원에 의존해도 안 생기던 아기가 생겼습니다.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날, 아기의 심장소리가 쿵쾅 쿵쾅들렸고

그 소리를 듣고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여 창피한 줄도 모른 채 그 자리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많은 집사님들이 간절히 기도해주신 덕에 제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할 수 있었고,

눈물로 기도하였기에 건강한 아들이 제 옆에 이렇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고관절 비구순 파열이라는 저의 질병도 저는 더 이상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아산중앙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더라도 완치의 확답은 못한다 하셨고,

현실적으로 수술을 한다 해도 어린 아기를 봐 줄 사람도, 나를 간병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1년에 2-3번정도 통원치료를 다니며 증상완하 하는 약만 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질병도 깨끗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제게 있기 때문입니다.

 

4.주향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떠한지

 

저는 내게 복 주시고, 나의 삶을 옳은데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홀로 사시며 농사지으시는 시어머님의 일손을 도우러 시댁에 가지 않는 한

저는 아들과 함께 열심히 주일성수 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목장모임에도, 중보기도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아들 리한이는 교회에 와서 찬송가를 들으면, 머리를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춥니다.

춤추는 아들의 모습에 제가 더 은혜를 받게 되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대전엔 친척도, 친구도 없지만 교회집사님들이 저희 영적인 언니이며 친구입니다.

객지에서의 결혼생활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향교회 집사님들로 인하여 영적으로 육적으로 풍성해졌습니다.

 

 

5.초청자들에 대한 권면

 

이제 이 글을 마치려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들께 짧은 시간에 제가 만난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저의 진심이 여러분의 가슴에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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